어린이집 분리불안에 대하여,

아기의 입장에서 본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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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분리불안이 생기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원인

PART 2. 문제의 본질은 도둑이다

PART 3. 아기들은 선거권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가 있으면 자꾸 방법론을 찾습니다.

저는 반대로, 많은 경우에 있어서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관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관점을 바꾸면 의외로 답이 쉽게 나옵니다.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은데 아이가 울고불고 하여 고민되시나요?

마음을 굳게 먹고, 하루 이틀 울면 그냥 밀어붙이려고 했는데 현관문 너머로 들리는 내 아이의 울음소리가 너무나 처절하여 맴찢이신가요?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을 못하고 분리불안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들으나 마나 한 교과서적인 대답 말고 저는 좀 현실적인 해답을 들려 드릴까 합니다.

많은 어머님들이 드디어 광명 찾은 초특급 현실적인 해결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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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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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 불안이 생기는 원인을 그냥 한 가지 입장으로 생각하면 답이 잘 안나옵니다.

다른 문제들도 대부분 그렇듯 분리불안도 전혀 다른 두 가지 출발점이 있어요.

  • 엄마와 안정된 애착이 형성되지 않은 경우
  • 엄마와 안정된 애착이 형성된 경우

이 두가지 경우에 따라서 해결방법이 완전히 다릅니다.

이번 포스팅은 1번, 즉 엄마와 안정된 애착이 형성되지 못한 경우의 해결책입니다.


먼저, 엄마와 안정된 애착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가 분리불안 증상을 보이는 경우, 아이들의 문제는 의외로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아이의 문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 입장이 되어 보는 것입니다.

자, 어디 한번 엄마와 충분히 애착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의 입장을 들어 볼까요?


“나는 아기입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났습니다. 이 세상이 어딘지도 모르고 그냥 엄마 탯줄 하나 붙잡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세상은 엄마 뱃속과는 너무 다릅니다. 엄마 뱃속에서는 배고픈적이 없었고, 추운적도, 더운적도 오줌 싸도 기분 나쁜 적도 없었는데

세상이라는 곳에 나와 보니 기분 나쁜 것 투성이입니다. 배도 고프고 오줌싸니 축축해져서 기분이 나쁘고 춥고 덥고 아프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내가 배고프고 기분 나쁠때마다 울어대니 엄마가 늘 나타납니다. 아니, 처음에는 그냥 자동으로 뭔가가 다 해결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엄마였어요. 나는 혼자서는 배고파도 해결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지만 엄마만 있으면 나는 안전합니다.

나는 내가 선택해서 온 것도 아닌데 혈혈단신 세상에 오게 되었고 이 세상에서 의지할 사람은 아직은 엄마밖에 없어요. 그런데 엄마가 가끔 사라집니다.

몇 분씩, 몇 시간씩, 며칠씩 사라집니다. 나는 엄마가 다시 안 나타날까 봐 너무 무섭습니다. 엄마는 또 나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합니다.

나는 엄마밖에 없는데 엄마는 나 때문에 힘들다고 합니다. 가끔 한숨도 쉽니다. 나는 엄마 없으면 살수가 없는데 엄마는 나를 낳은 것을 후회하는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이상한 곳에 나를 두고 사라졌습니다. 엄마는 내가 없으면 편할 것 같았는데 그래서 엄마가 나를 버린 것일까요?

동생을 더 사랑하는 것 같았는데 엄마는 동생하고만 살려는 것일까요? 나는 엄마가 없으면 죽을 것 같으니 목숨을 걸고 소리를 지르고 울어야겠습니다.

엄마가 이 소리를 듣고 나타날지도 모르니까요.”


예전에 미술치료실에 분리불안이 심한 아이가 온 적이 있어요. 엄마 얘기를 들어보니 아이가 두 돌이 안되었을 때에

이틀 정도 가출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남편과 싸우고 아이가 잘 때 친정에 간 거였어요.

엄마는 ‘고작’ 이틀 정도 떨어져 있었다고 이렇게 심하게 분리불안이 생긴 것을 이해 못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볼까요? 아이는 엄마의 ‘친정’을 모릅니다. 이해를 못합니다. 엄마가 그냥 사라졌는데 다시 나타날지 전혀 모릅니다.

만약 입장을 바꾸어 볼까요?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아기가 사라졌습니다. 이유도 모르고 본 사람도 없고 그냥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어떤 기분일까요? 미치고 팔짝 뛰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틀 뒤에 아기가 홀연히 나타났다고 쳐봐요. 여전히 아기가 왜 사라졌는지 이유를 모릅니다. 그러면 당연히 불안이 생기지 않을까요?

이유를 모르니까요. 내가 자는 사이에 아기가 언제 또 사라질지 모르니까요. 밤마다 불안해집니다.


서른살이 넘은 어른인 엄마도 아기가 영문도 모른 채 사라지면 미치기 일보직전이 됩니다. 그런데 아기는 어떤 심정일까요?

엄마는 아기에게는 목숨줄이므로 단 한번의 ‘엄마가 사라지는 경험’ 이라도 두고두고 트라우마가 되지 않을까요?

또 사라지고 이번에는 영영 나타나지 않을까봐 엄청나게 무섭지 않을까요? 엄마는 다시 돌아갈 것을 알고 있었으니 ‘고작’ 이틀이지만

아무 영문도 모르는 아기는 그 이틀이 ‘영원’ 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PART 1. 분리불안이 생기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원인

PART 2. 문제의 본질은 도둑이다

PART 3. 아기들은 선거권이 없다

주 양육자가 자주 바뀌었든, 엄마가 양육이 힘들어서 짜증과 화를 자주 냈든, 아무튼 만약 어떤 이유로든 아기와 엄마의 애착이

튼튼하게 형성되지 않았다면 (엄마는 나를 절대로 버리지 않을 것이고 틀림없이 나를 사랑해’)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았으면

아이의 분리불안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도둑이 들어오면 개가 짖지요. 도둑이 들어온게 문제가 아니라 개가 짖는게 문제지요.


마찬가지로 애착이 잘 형성되지 못했다면 그걸 해결하는게 우선이지 아이의 분리불안을 없애는 것이 우선이 아닙니다.

‘전문가’에게 들은 이런 묘책 저런 묘책을 써가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적응’ 시키는 것은

마치 도둑이 와도 짖지 않도록 개를 훈련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불안해도 울지 않는 아이가 되는 것이죠.





<Q&A>


애착형성이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어쩌긴요. 일단 어린이집에 보낼게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엄마가 키우며 애착형성을 다시 해야겠지요. 엄마가 엄청나게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어야 하지요. 문제의 해결은 어찌보면 늘 단순합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면 거기서부터 다시 풀면 됩니다. 그런데 그게 귀찮아서, 나 편하자고 쉬운 길을 자꾸 택하면 나중에는 육아의 고통이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경제적인 부분이 마음에 걸려요.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은 어떻게 하죠?

  • 계산을 해봅시다. 연봉 3000만원 직장을 2년 못 다니면 6000만원을 벌지 못합니다. 6천만원이 작은 돈은 아니지만 서울 아파트 평수로 따지면 고작 두 세평 더 큰 집을 살 수 있는 돈입니다. 반면, 아이가 건강하지 못하게 자라면 온 가족 모두 평생 고생합니다.


경력단절이 되진 않을까 불안해요. 제 자아실현과 꿈을 희생해야 하는 건가요?

  • 아들 둘을 다 키운 선배이자 20년 워킹맘 엄마로서 저는 단언합니다. 여자가 평생 일을 하고 싶으면 더더욱, 몇 년 경력단절 되더라도 가장 최우선으로 아기를 건강하게 키워야 합니다. 애착과 자율성을 튼튼하게 키워두어야 합니다.그러면 건강하고 독립심있게 자란 자녀들이 스스로 자기 일은 자기가 해결하며 워킹맘 엄마의 가장 큰 우군이 되어 줍니다.

PART 1. 분리불안이 생기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원인

PART 2. 문제의 본질은 도둑이다

PART 3. 아기들은 선거권이 없다

이 모든 건 아기들이 선거권이 없어 생긴 일입니다.

정부의 정책이 아기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하지 않고 선거권이 있는 어른의 이익에 부합하게 돌아갑니다.


어른들이 육아가 힘들다니 어린이집 무상보육을 해주게 되고 그러다 보니 다들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게 됩니다.

그런데 내 새끼 하나만 키워도 엄청나게 힘든데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무슨 슈퍼우먼이라고 다섯명, 열명을 동시에 잘 돌볼 수 있을까요?

어떤 경우에라도 아기들을 학대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좋은 선생님일지라도

그 보육의 질이 어떠한 한계가 있을 것인지는 불 보듯 뻔합니다.


아직 애착이 형성되지 못한 불안한 아기들은 자기가 어린이집에 맡겨지는게 고통입니다.

반면 엄마들은 아기를 자기가 키우는게 고통입니다. 둘다 고통스러운거 맞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어른과 아기, 두 사람이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누가 양보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사회적 정의일까요?


아이 키우는 것, 말 못하게 힘들지요.. 저도 첫째는 혼자서 다 키웠기 때문에 그 마음 잘 압니다.

하루에 딱 삼십분만이라도 누가 좀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요.

그래도 정신차리고 잘 생각해보면 삼년고생해서 삼십년이 편한게 낫습니다.

육아 첫 삼년,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갑니다.


참! 반면 애착형성이 안정된 아기들의 분리불안은 어떻게 하냐고요? 사실 그런 경우에는 분리불안 증상이 거의 없습니다.

있더라도 한 일주일 정도면 사라지고, 안되면 인터넷에 흔히 돌아다니는 그런 방법을 쓰시면 됩니다.

앞선 케이스와는 해결법이 완전히 다르지요. 분리불안이라기 보다는 사실 엄마와 있는게 더 좋으니까

자신에게 더 이득이 되는 걸 찾기 위해 가장 좋은 전략을 쓰는 거에요. 아기들이 생각보다 똑똑합니다.

어린이집 분리불안에 대하여,

아기의 입장에서 본 해결책

PART 1.

분리불안이 생기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원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가 있으면 자꾸 방법론을 찾습니다. 저는 반대로, 많은 경우에 있어서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관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관점을 바꾸면 의외로 답이 쉽게 나옵니다.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은데 아이가 울고불고 하여 고민되시나요? 마음을 굳게 먹고, 하루 이틀 울면 그냥 밀어붙이려고 했는데

현관문 너머로 들리는 내 아이의 울음소리가 너무나 처절하여 맴찢이신가요?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을 못하고 분리불안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들으나 마나 한 교과서적인 대답 말고 저는 좀 현실적인 해답을 들려 드릴까 합니다.

많은 어머님들이 드디어 광명 찾은 초특급 현실적인 해결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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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 불안이 생기는 원인을 그냥 한 가지 입장으로 생각하면 답이 잘 안나옵니다. 다른 문제들도 대부분 그렇듯 분리불안도 전혀 다른 두 가지 출발점이 있어요.


엄마와 안정된 애착이 형성되지 않은 경우

엄마와 안정된 애착이 형성된 경우

이 두가지 경우에 따라서 해결방법이 완전히 다릅니다.

이번 포스팅은 1번, 즉 엄마와 안정된 애착이 형성되지 못한 경우의 해결책입니다.


먼저, 엄마와 안정된 애착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가 분리불안 증상을 보이는 경우, 아이들의 문제는 의외로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아이의 문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 입장이 되어 보는 것입니다.

자, 어디 한번 엄마와 충분히 애착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의 입장을 들어 볼까요?





“나는 아기입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났습니다. 이 세상이 어딘지도 모르고 그냥 엄마 탯줄 하나 붙잡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세상은 엄마 뱃속과는 너무 다릅니다. 엄마 뱃속에서는 배고픈적이 없었고, 추운적도, 더운적도 오줌 싸도 기분 나쁜 적도 없었는데 세상이라는 곳에 나와 보니 기분 나쁜 것 투성이입니다. 배도 고프고 오줌싸니 축축해져서 기분이 나쁘고 춥고 덥고 아프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내가 배고프고 기분 나쁠때마다 울어대니 엄마가 늘 나타납니다. 아니, 처음에는 그냥 자동으로 뭔가가 다 해결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엄마였어요. 나는 혼자서는 배고파도 해결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지만 엄마만 있으면 나는 안전합니다. 나는 내가 선택해서 온 것도 아닌데 혈혈단신 세상에 오게 되었고 이 세상에서 의지할 사람은 아직은 엄마밖에 없어요. 그런데 엄마가 가끔 사라집니다. 몇 분씩, 몇 시간씩, 며칠씩 사라집니다. 나는 엄마가 다시 안 나타날까 봐 너무 무섭습니다. 엄마는 또 나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합니다. 나는 엄마밖에 없는데 엄마는 나 때문에 힘들다고 합니다. 가끔 한숨도 쉽니다. 나는 엄마 없으면 살수가 없는데 엄마는 나를 낳은 것을 후회하는 것도 같습니다.그런데 엄마가 이상한 곳에 나를 두고 사라졌습니다. 엄마는 내가 없으면 편할 것 같았는데 그래서 엄마가 나를 버린 것일까요? 동생을 더 사랑하는 것 같았는데 엄마는 동생하고만 살려는 것일까요? 나는 엄마가 없으면 죽을 것 같으니 목숨을 걸고 소리를 지르고 울어야겠습니다. 엄마가 이 소리를 듣고 나타날지도 모르니까요.”





예전에 미술치료실에 분리불안이 심한 아이가 온 적이 있어요. 엄마 얘기를 들어보니 아이가 두 돌이 안되었을 때에 이틀 정도 가출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남편과 싸우고 아이가 잘 때 친정에 간 거였어요.

엄마는 ‘고작’ 이틀 정도 떨어져 있었다고 이렇게 심하게 분리불안이 생긴 것을 이해 못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볼까요? 아이는 엄마의 ‘친정’을 모릅니다. 이해를 못합니다. 엄마가 그냥 사라졌는데 다시 나타날지 전혀 모릅니다. 만약 입장을 바꾸어 볼까요?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아기가 사라졌습니다. 이유도 모르고 본 사람도 없고 그냥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어떤 기분일까요? 미치고 팔짝 뛰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틀 뒤에 아기가 홀연히 나타났다고 쳐봐요. 여전히 아기가 왜 사라졌는지 이유를 모릅니다. 그러면 당연히 불안이 생기지 않을까요?이유를 모르니까요. 내가 자는 사이에 아기가 언제 또 사라질지 모르니까요. 밤마다 불안해집니다.


서른살이 넘은 어른인 엄마도 아기가 영문도 모른 채 사라지면 미치기 일보직전이 됩니다. 그런데 아기는 어떤 심정일까요?  엄마는 아기에게는 목숨줄이므로 단 한번의 ‘엄마가 사라지는 경험’ 이라도 두고두고 트라우마가 되지 않을까요? 또 사라지고 이번에는 영영 나타나지 않을까봐 엄청나게 무섭지 않을까요? 엄마는 다시 돌아갈 것을 알고 있었으니 ‘고작’ 이틀이지만 아무 영문도 모르는 아기는 그 이틀이 ‘영원’ 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part.2

문제의 본질은 도둑이다

주 양육자가 자주 바뀌었든 엄마가 양육이 힘들어서 짜증과 화를 자주 냈든 아무튼 만약 어떤 이유로든 아기와 엄마의 애착이

튼튼하게 형성되지 않았다면 (엄마는 나를 절대로 버리지 않을 것이고 틀림없이 나를 사랑해)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았으면

아이의 분리불안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도둑이 들어오면 개가 짖지요. 도둑이 들어온 게 문제가 아니라 개가 짖는 게 문제지요.


마찬가지로 애착이 잘 형성되지 못했다면 그걸 해결하는 게 우선이지 아이의 분리불안을 없애는 것이 우선이 아닙니다.

'전문가'에게 들은 이런 묘책 저런 묘책을 써가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적응' 시키는 것은 마치 도둑이 와도 짖지 않도록 개를 훈련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불안해도 울지 않는 아이가 되는 것이죠.



<Q&A>


애착형성이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쩌긴요. 일단 어린이집에 보낼 게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엄마가 키우며 애착형성을 다시 해야겠지요. 엄마가 엄청나게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어야 하지요. 문제의 해결은 어찌보면 늘 단숩합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면 거기서부터 다시 풀면 됩니다. 그런데 그게 귀찮아서, 나편하자고 쉬운 길을 자꾸 택하면 나중에는 육아의 고통이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경제적인 부분이 마음에 걸려요.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은 어떻게 하죠?

계산을 해봅시다. 연봉 3000만원 직장을 2년 못 다니면 6000만원을 벌지 못합니다. 6천만원이 작은 돈은 아니지만 서울 아파트 평수로 따지면 고작 두 세평 더 큰 집을 살 수 있는 돈입니다. 반면, 아이가 건강하지 못하게 자라면 온 가족 모두 평생 고생합니다.


경력단절이 되진 않을까 불안해요. 제 자아실현과 꿈을 희생해야 하는 건가요?

아들 둘을 다 키운 선배이자 20년 워킹맘 어마로서 저는 단언합니다. 여자가 평생 일을 하고 싶으면 더더욱, 몇 년 경력단절 되더라도 가장 최우선으로 아기를 건강하게 키워야 합니다 애착과 자율성을 튼튼하게 키워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건강하고 독립심있게 자란 자녀들이 스스로 자기 일은 자기가 해결하며 워킹맘 엄마의 가장 큰 우군이 되어 줍니다.


part.2

아기들은 선거권이 없다

이 모든 건 아기들이 선거권이 없어 생긴 일입니다.

정부의 정책이 아기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하지 않고 선거권이 있는 어른의 이익에 부합하게 돌아갑니다.


어른들이 육아가 힘들다니 어린이집 무상보육을 해주게 되고 그러다 보니 다들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게 됩니다.

그런데 내 새끼 하나만 키워도 엄청나게 힘든데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무슨 슈퍼우먼이라고 다섯명, 열명을 동시에 잘 돌볼 수 있을까요?

어떤 경우에라도 아기들을 학대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좋은 선생님일지라도

그 보육의 질이 어떠한 한계가 있을 것인지는 불 보듯 뻔합니다.


아직 애착이 형성되지 못한 불안한 아기들은 자기가 어린이집에 맡겨지는게 고통입니다.

반면 엄마들은 아기를 자기가 키우는게 고통입니다. 둘다 고통스러운거 맞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어른과 아기, 두 사람이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누가 양보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사회적 정의일까요?


아이 키우는 것, 말 못하게 힘들지요.. 저도 첫째는 혼자서 다 키웠기 때문에 그 마음 잘 압니다. 하루에 딱 삼십분만이라도 누가 좀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요. 그래도 정신차리고 잘 생각해보면 삼년고생해서 삼십년이 편한게 낫습니다.

육아 첫 삼년,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갑니다.


참! 반면 애착형성이 안정된 아기들의 분리불안은 어떻게 하냐고요? 사실 그런 경우에는 분리불안 증상이 거의 없습니다.

있더라도 한 일주일 정도면 사라지고, 안되면 인터넷에 흔히 돌아다니는 그런 방법을 쓰시면 됩니다.

앞선 케이스와는 해결법이 완전히 다르지요. 분리불안이라기 보다는 사실 엄마와 있는게 더 좋으니까

자신에게 더 이득이 되는 걸 찾기 위해 가장 좋은 전략을 쓰는 거에요. 아기들이 생각보다 똑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