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PART 1.

행동 수정 이론의 함정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습니다. 그 책 속의 범고래는 무게가 3톤이 넘는 범고래인데요, 미국 플로리다 시월드라는 해양관에서 삽니다. 같은 환경에서 살던 ‘틸리쿰’ 이라는 이름의 범고래가 있습니다. 틸리쿰은 무려 14년간 함께 일해온 조련사를 비롯 총 3명의 사람을 죽였습니다. 세상을 발칵 뒤엎고 고래쇼를 폐지하게 한 범고래 틸리쿰, 어찌된 일일까요?



책에서는 고래를 조련할 때 고래가 잘하면 즉각적인 칭찬을 하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련사는 왜 고래를 칭찬할까요? 고래를 사랑해서요? 아닐겁니다. 칭찬으로 조련해서 고래가 멋진 쇼를 하면 돈을 벌 수 있기 떄문입니다. 저는 틸리쿰이 사람을 해쳤다는 놀라운 기사를 접하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조련사가 진정으로 고래를 사랑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조련사가 진심으로 고래를 사랑했다면 그렇게 해양관에 가두어 두고 조련을 하기 보다는 광활한 바다로 돌려보내자는 운동을 했을 것 같습니다. 인생을 걸고, 전 재산을 걸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그런거에요. 조련사는 아마도 자신이 고래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점이 저는 안타깝고 두렵기도 합니다.

우리는 정말 누군가를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요?

사람은 왜 칭찬을 할까요? 사람은 상대를 칭찬할 때, 특히 상대의 행동을 관찰할 때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대게 상대를 컨트롤하려는 심리를 내면에 깔고 있습니다. 저도 행동에 대한 칭찬이 어떤 해로운 점이 있는지 깊이 통찰하기 전까지는 아이를 키우면서 늘 내 입맛에 맞는 행동을 칭찬했었습니다. 밥을 많이 먹이고 싶으면 아이가 밥을 많이 먹을 때 마다 마구 칭찬했고, 방을 잘 정리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으면 방을 어지를 때는 혼을 내고 방을 잘 치울 때 마다 과하게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래놓고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착각했습니다.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들판의 소나무처럼 키워야지, 내 입맛에 맞는 분재로 만들어서는 안되겠지요. 멀쩡히 잘 자랄 어린 소나무를 이리 저리 비틀고 철사로 칭칭 감아 내 마음에 드는 모양으로 만들면, 철사를 구부리는 내 손가락도 아프고 피가 날 수 있습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면 소나무에 철사를 감느라 손가락에 피가 날일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내향적인 아이가 있고 외향적인 아이가 있습니다 엄마들은 아이가 내향적이면 보다 외향적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아무래도 외향적인 아이가 발표도 잘하고 눈에 띕니다. 그러나 내향적이어서 더 좋은 것도 아니고 외향적이어서 더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냥 성향일 뿐 입니다.


정리정돈에 능한 아이가 있고 어지르는데 능한 아이가 있습니다. 어지르는 것도 재주입니다. 아이가 컴퓨터 게임만 하거나 스마트폰만 보면 어지를 일이 없거든요. 그런데 한꺼번에 책을 여러권씩 꺼내 읽고, 그림을 그렸다가 색종이를 오렸다가 또 뭔가를 조물락조물락 만드는 아이는 온 집안을 어지릅니다. 그럴 때 정리정돈을 너무 강요하면 치울 엄두가 안나서 안 어지릅니다. 성장할 기회를 잃는 것이죠.

part.2

아이는 엄마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란다'

엄마의 역할은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먹여주고 재워주고 돌봐주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행동에 대한 칭찬을 통해 아이를 조종해 나가면 아이가 불안해집니다. 


받아쓰기 100점을 맞았다고 “우리 딸 최고!” 라고 말하며 잘했을 때만 칭찬하면 거기에는 “다음에도 이렇게 잘해. 안 그러면 넌 최고도 아니고 내 딸도 아니야.” 라는 뉘앙스가 담겨있습니다.


엄마의 칭찬을 들어서 얼핏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은데 왠지 평안해지지 않습니다. 내가 공부를 안하면 엄마의 사랑을 잃을 것만 같습니다.



부모의 이런 조건적 칭찬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아이 또한 조건적 사랑을 하는 어른으로 자랄테니까요. 그래서 자녀가 어른이 되었을 때 부모가 물려줄 유산이라도 좀 있고, 손주라도 키워줄 수 있으면 내 부모요, 가난하고 늙고 병들어 병수발이 필요한 지경이면 내 부모 하기 싫고,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죠. 말 잘 들으면 내 딸, 말 안 듣고 공부 안하면 내 딸 소리 못 들었던 결과지요. 그런 상황, 너무 싫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part.3

존재(Being)를 칭찬하기

아이의 doing이 아니라 being을 칭찬해야 합니다.


행위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뭘 잘해서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존재 자체를 기뻐하고 칭찬해야 합니다. 아이가 말을 잘 들어서, 공부를 잘해서 칭찬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내 곁에 있어줘서 기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거죠.


이런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아이들은 그저 아침에 집을 나선 후, 저녁에 집에 들어올 때 털끝 하나 안 다치고 다시 돌아오면 그게 자기 할 일을 다 한 거다. 아이들에게 더 이상의 임무는 없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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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행동 수정 이론의 함정

PART 2. 엄마는 아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란다'

PART 3. 존재(being)를 칭찬하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습니다. 그 책 속의 범고래는 무게가 3톤이 넘는 범고래인데요, 미국 플로리다 시월드라는 해양관에서 삽니다. 같은 환경에서 살던 ‘틸리쿰’ 이라는 이름의 범고래가 있습니다. 틸리쿰은 무려 14년간 함께 일해온 조련사를 비롯 총 3명의 사람을 죽였습니다. 세상을 발칵 뒤엎고 고래쇼를 폐지하게 한 범고래 틸리쿰, 어찌된 일일까요?

책에서는 고래를 조련할 때 고래가 잘하면 즉각적인 칭찬을 하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련사는 왜 고래를 칭찬할까요? 고래를 사랑해서요? 아닐겁니다. 칭찬으로 조련해서 고래가 멋진 쇼를 하면 돈을 벌 수 있기 떄문입니다. 저는 틸리쿰이 사람을 해쳤다는 놀라운 기사를 접하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조련사가 진정으로 고래를 사랑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조련사가 진심으로 고래를 사랑했다면 그렇게 해양관에 가두어 두고 조련을 하기 보다는 광활한 바다로 돌려보내자는 운동을 했을 것 같습니다. 인생을 걸고, 전 재산을 걸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그런거에요. 조련사는 아마도 자신이 고래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점이 저는 안타깝고 두렵기도 합니다.

우리는 정말 누군가를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요?

사람은 왜 칭찬을 할까요? 사람은 상대를 칭찬할 때, 특히 상대의 행동을 관찰할 때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대게 상대를 컨트롤하려는 심리를 내면에 깔고 있습니다. 저도 행동에 대한 칭찬이 어떤 해로운 점이 있는지 깊이 통찰하기 전까지는 아이를 키우면서 늘 내 입맛에 맞는 행동을 칭찬했었습니다. 밥을 많이 먹이고 싶으면 아이가 밥을 많이 먹을 때 마다 마구 칭찬했고, 방을 잘 정리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으면 방을 어지를 때는 혼을 내고 방을 잘 치울 때 마다 과하게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래놓고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착각했습니다.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들판의 소나무처럼 키워야지, 내 입맛에 맞는 분재로 만들어서는 안되겠지요. 멀쩡히 잘 자랄 어린 소나무를 이리 저리 비틀고 철사로 칭칭 감아 내 마음에 드는 모양으로 만들면, 철사를 구부리는 내 손가락도 아프고 피가 날 수 있습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면 소나무에 철사를 감느라 손가락에 피가 날일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내향적인 아이가 있고 외향적인 아이가 있습니다 엄마들은 아이가 내향적이면 보다 외향적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아무래도 외향적인 아이가 발표도 잘하고 눈에 띕니다. 그러나 내향적이어서 더 좋은 것도 아니고 외향적이어서 더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냥 성향일 뿐 입니다.


정리정돈에 능한 아이가 있고 어지르는데 능한 아이가 있습니다. 어지르는 것도 재주입니다. 아이가 컴퓨터 게임만 하거나 스마트폰만 보면 어지를 일이 없거든요. 그런데 한꺼번에 책을 여러권씩 꺼내 읽고, 그림을 그렸다가 색종이를 오렸다가 또 뭔가를 조물락조물락 만드는 아이는 온 집안을 어지릅니다. 그럴 때 정리정돈을 너무 강요하면 치울 엄두가 안나서 안 어지릅니다. 성장할 기회를 잃는 것이죠.



PART 1. 행동 수정 이론의 함정

PART 2. 아이는 엄마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란다'

PART 3. 존재(being)를 칭찬하기

엄마의 역할은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먹여주고 재워주고 돌봐주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행동에 대한 칭찬을 통해 아이를 조종해 나가면 아이가 불안해집니다. 


받아쓰기 100점을 맞았다고 “우리 딸 최고!” 라고 말하며 잘했을 때만 칭찬하면 거기에는 “다음에도 이렇게 잘해. 안 그러면 넌 최고도 아니고 내 딸도 아니야.” 라는 뉘앙스가 담겨있습니다.


엄마의 칭찬을 들어서 얼핏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은데 왠지 평안해지지 않습니다. 내가 공부를 안하면 엄마의 사랑을 잃을 것만 같습니다.



부모의 이런 조건적 칭찬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아이 또한 조건적 사랑을 하는 어른으로 자랄테니까요. 그래서 자녀가 어른이 되었을 때 부모가 물려줄 유산이라도 좀 있고, 손주라도 키워줄 수 있으면 내 부모요, 가난하고 늙고 병들어 병수발이 필요한 지경이면 내 부모 하기 싫고,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죠. 말 잘 들으면 내 딸, 말 안 듣고 공부 안하면 내 딸 소리 못 들었던 결과지요. 그런 상황, 너무 싫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PART 1. 행동 수정 이론의 함정

PART 2. 아이는 엄마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란다'

PART 3. 존재(being)를 칭찬하기

아이의 doing이 아니라 being을 칭찬해야 합니다. 


행위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뭘 잘해서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존재 자체를 기뻐하고 칭찬해야 합니다. 아이가 말을 잘 들어서, 공부를 잘해서 칭찬하는게 아니라 그냥 내 곁에 있어줘서 기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거죠.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아이들은 그저 아침에 집을 나선 후, 저녁에 집에 들어올 때 털끝하나 안 다치고 다시 돌아오면 그게 자기 할 일 다 한거다. 아이들에게 더 이상의 임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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